서론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들은 지금까지 수많은 감독과 작가들의 손을 거치며 전쟁의 참상과 인간의 희로애락을 그려냈다. 하지만 그렇게 많지 않은 작품이 현장감과 긴장감을 극도로 끌어올리면서도, 당시 병사들이 느꼈을 두려움과 인간애를 동시에 깊이 있게 담아냈다고 말할 수 있다. 샘 멘데스 감독의 영화 1917은 바로 그 점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수많은 전쟁 영화가 ‘장엄한 전투씬’이나 ‘역사의 거대한 물결’을 부각하는 반면, 1917은 하나의 소규모 임무에 집중하면서도 전쟁이 만들어낸 거대한 비극의 한복판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특히 “원 컨티뉴어스 숏(One Continuous Shot)” 기법처럼 보이도록 촬영했다는 점이 주목을 끄는데, 이는 곧 전쟁의 시간을 끊김 없이 ‘동행’하게 한다. 이 독특한 시도는 현장에서 뛰고 숨 쉬는 병사의 시선으로, 관객들에게 ‘이 순간’을 온전히 체험하게 만드는 강력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본론
1) 줄거리
영화 1917은 제목 그대로,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작한다. 주인공들은 영국군 병사인 스코필드(조지 맥케이 분)와 블레이크(딘-찰스 채프먼 분)로, 그들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참호전 속에서 ‘임무’를 부여받는다. 바로 적군의 함정을 간파하지 못하고 전진하려는 아군 부대에게 ‘진격 중지 명령’을 전하기 위해, 저 멀리 최전선으로 이동해야 하는 것이다. 얼핏 소소해 보이는 ‘전령 임무’가 가지는 무게는 막중하다. 수백 명의 전우가 목숨을 걸고 돌격하려는 바로 그 전선을 향해, 두 병사는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적진을 뚫고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이 단순해 보이는 목표가 고스란히 영화의 중축을 이룬다.
전쟁 영화에서 흔히 보는 대규모 전투나 수많은 군인이 등장하는 장면 대신, 1917은 두 병사의 걸음을 따라가며 전쟁의 공포와 비극을 세밀하게 포착한다. 폐허가 된 마을, 지뢰밭, 포탄으로 산산조각난 참호를 지날 때마다 스코필드와 블레이크는 공포와 마주한다. 시체가 즐비한 시궁창 같은 곳을 지나가야 하고, 폭격이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밤길을 헤매야 하며, 독일군과 맞닥뜨리는 순간에는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음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영화는 ‘전령을 보내야 하는 이유’, ‘목숨을 걸고서라도 전해야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왜 이토록 부질없는 전쟁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2) 배우
이 작품이 특별한 감동과 몰입도를 자아내는 데에는, 젊은 배우들의 힘이 크게 작용한다. 조지 맥케이는 스코필드 역으로 분해, 전쟁의 한복판에서 겪어야 하는 공포와 혼란, 그리고 생존에 대한 본능을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특히 대사가 많지 않은 순간에도, 목소리에 잔잔히 묻어나는 떨림과 눈빛의 흔들림만으로 관객을 전장 속으로 끌어들이는 연기가 인상적이다. 함께 임무를 수행하는 동료 블레이크 역의 딘-찰스 채프먼 역시, 전쟁영화 속에서 흔히 보아온 ‘강인한 병사’의 이미지가 아닌, 아직 미숙한 소년성과 동료애를 동시에 품은 인물을 실감 나게 그려낸다.
그 외에 베네딕트 컴버배치, 콜린 퍼스 등 유명 배우들이 카메오에 가깝게 등장하기도 하지만, 영화의 주도권은 철저히 스코필드와 블레이크에게 있다. 이들이 마주치는 상관, 병사, 민간인들은 잠깐의 교차점으로 스쳐 지나가며, 두 주인공이 겪는 감정적 파고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실제로 관객은 긴 여정 동안 이들과 함께 공포와 고독, 희망을 동시에 체험하게 되는데, 이는 단연 배우들의 호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전쟁 속에서 병사들이 느꼈을 ‘보이지 않는 압박감’과 ‘정신적 트라우마’는 표현하기 매우 까다로운 감정이다. 하지만 배우들은 세세한 표정 연기와 몸짓 하나하나로, 전시에 놓인 개인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으며, 동시에 얼마나 굳건해질 수도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3) 총평
영화 1917이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가장 큰 이유는, 무미건조하게 흘러갈 수도 있는 ‘전령’ 임무를 숨 막히는 전쟁 드라마로 승화시켰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샘 멘데스 감독과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는 ‘원 컨티뉴어스 숏’ 기법처럼 보이는 연출을 택했다. 사실상 몇 번의 편집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유려하게 연결함으로써 한순간도 끊기지 않는 ‘현장감’을 만들었다. 관객은 극장 안에서 스코필드와 블레이크를 따라 지옥 같은 전장을 걷고, 뛰고, 숨죽이게 된다. 특정 장면에서 의도적으로 배경음악이 사라지거나, 폭발음이 맥없이 울리는 순간에는 마치 실제 전장에 있는 것처럼 시간마저 느리게 지나가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된다.
또한 이 작품은 전쟁의 ‘영웅담’을 노골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개인의 생존, 그리고 동료를 살리기 위한 ‘작고도 큰’ 노력이 어떤 희생과 결단을 동반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수백, 수천 명의 군중이 한꺼번에 돌진하는 장면도 없고, 화려한 군사 작전이 실감 나게 펼쳐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전쟁의 공포를 훨씬 생생하게 전달한다. 전쟁은 하나의 대서사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삶이 무너지고 뒤틀리는 작은 순간들의 합이기 때문이다. 그 작은 순간들을 쉴 새 없이 따라붙는 카메라 시선 덕분에, 관객은 그들의 땀과 피, 숨소리까지도 고스란히 함께 느끼게 된다.
게다가 시대적 배경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17년은 이미 유럽 전역이 참호전으로 지쳐 있던 시기였다. 수많은 병사들이 의미 없는 전투와 감염병,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며 진흙탕 속에서 싸워야 했다. 군인이라기보다 거의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고된 노역’에 가까운 상황이기도 했는데, 영화 1917은 당대 병사들이 맞닥뜨렸을 지옥 같은 참호전의 한 단면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전쟁을 미화하지도, 그렇다고 절망만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그저 인물들이 처한 물리적·심리적 한계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통해, 전쟁이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단련시키는지, 때로는 얼마나 쉽게 허무하게 죽음으로 내모는지를 사무치게 체감하게 한다.
결론
전체적으로, 영화 1917은 ‘전쟁 영화’라는 장르에 새로운 형식적 도전과 깊이 있는 정서를 함께 안겨준 작품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조금은 낯설고 먼 시대적 배경이지만, 덕분에 우리는 ‘거대한 이데올로기 대립’이나 ‘엄청난 전략’보다도, 차라리 개인의 삶과 선택에 집중할 수 있다. 수많은 관객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정말 2시간가량 전장 속을 함께 뛰어다닌 기분이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샘 멘데스 감독과 로저 디킨스 촬영감독, 그리고 배우들의 호흡이 만들어낸 강렬한 몰입감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이미 전쟁을 여러 방식으로 경험하고 해석해온 시대지만, 1917이 주는 메시지는 여전히 새롭고 묵직하다. 쓰러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작고도 큰 희망을 놓지 않는 병사들의 모습은, 비단 100년 전의 과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끝을 알 수 없는 전쟁 속에서, 한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고 어떻게 동료를 지켜내려 애쓰는지, 그리고 이는 결국 전쟁의 부조리함과 비극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는 관객들에게 ‘왜 우리는 여전히 전쟁 이야기를 보고, 또 기억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준다. 전쟁이 만들어낸 수많은 희생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고, 평화와 생명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함으로써, 1917은 긴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단순한 전쟁 액션이 아닌, 인간적인 울림을 전해주는 진정한 예술적 성취라 할 수 있을 것이다.